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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산림녹화 유네스코 등재 추진’ 관련 질의응답 (2018.4.24.~30.)

김정태 2018-04-24 17:48:13 조회수 7,311

 

[FAQ] ‘산림녹화 유네스코 등재 추진 관련 질의응답

 

작성 : ()한국산림정책연구회, 2018년 4월 24일 ~ 30일

 

 

   한국산림정책연구회는 한국의 성공적인 산림녹화를 유네스코(UNESCO)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하여 관련 기록물을 수집 중에 있습니다. 본 연구회는 한국의 산림녹화가 어떻게 이뤄졌으며, 그 기록물이 유네스코 등재 가치가 있는지를 일반 국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질의응답식으로 여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1. 질문: 우리나라는 황폐한 산림을 그대로 두어도 자연적으로 복원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는가?


   답변: 한국의 기후는 대륙성 기후로서 겨울에는 춥고, 봄과 가을에는 비가 제대로 오지 않아 건조기가 지속되며, 여름에만 고온 다습합니다. 강수량은 연간 1,300mm로서 상당히 많은 편이지만, 이 중에서 60% 이상이 장마철 한 달 동안에 집중 호우로 쏟아집니다. 이로 인하여 산에서 흙이 대량으로 쓸려내려 와서 논밭을 덮치고, 홍수가 자주 일어나서 농사를 망칩니다. 민둥산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홍수와 가뭄의 악순환이 지속되며, 이런 역사가 과거 19세기부터 1980년대까지 지속되었음을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식목 철인 3월과 4월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봄에 나무를 가파른 산에 심어 놓으면 말라 죽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3월부터 장마가 시작되는 6월 말까지 3개월 사이에 심어놓은 나무들이 수분부족으로 많이 죽습니다. 나무를 가꾸지 않으면 숲이 제대로 우거지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자연회복이 되는 곳은 산림황폐가 심하지 않은 마을 주변의 밋밋한 야산들과 인간의 접근이 어려운 깊은 산속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마을 주변에서 경사가 급하거나 암반이 노출된 극심한 황폐지 혹은 독나지(禿裸地)에서는 자연회복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천천히 일어납니다. 1950년대 당시 한국의 산림은 극도로 황폐해서 겉흙이 모두 없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방치할 경우 풀씨와 나무가 자연적으로 침입하여 스스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으며, 지속적인 낙엽채취로 인해서 산림토양이 극도로 척박해서 자연회복이 매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1950년대 남한의 전 산림면적 중에서 민둥산은 58%에 달했으며,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사막과 같은 황폐지(“요사방지”로 불림)가 68만ha에 달했습니다(전국 산림면적의 11%). 이런 황폐지에는 주변에 식물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풀씨 혹은 나무 씨앗이 자연적으로 날라 오지 않아서 자연회복이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겉흙이 안정되어 있지 못하면서 경사가 진 곳이라면(예: 경북 영일지구와 동대산) 장마철 폭우로 인하여 겉흙이 자꾸 씻겨나가기 때문에 식물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이런 곳은 인간의 개입(사방공사, 砂防工事라고 합니다) 없이는 자연회복이 불가능한 곳입니다.



2. 질문: 해방 이후 실시한 조림 면적은 얼마나 되는가?


   답변: 일제강점기(1910년)부터 지금(2010년)까지 조림 면적은 총 779만ha입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214만ha(남북한 합친 면적), 이승만 정부(1948-1959) 시절 103만ha, 1960년부터 1972년까지 195만ha, 산림청이 내무부로 이관된 1973년부터 1987년까지 206만ha, 1988년부터 2010년까지 59만ha입니다. 즉, 해방 이후 1948년부터 2010년까지 총 563만ha에 조림을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장소에 중복해서 조림한 경우도 상당히 많아서 정확한 실제 조림면적을 계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중에서 조림이 성공적으로 수행된 곳은 260만ha 정도 됩니다. 이 중에는 이태리포플러(73만ha)와 같이 하천부지와 마을 주변의 빈 땅에 조림한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현사시(18만ha)는 대부분 벌채되었으며, 낙엽송과 리기다소나무림도 일부 벌채되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인공조림면적은 대략 170만ha 정도입니다.


   1948년부터 1972년까지 총 298만ha에 조림했지만, 이 기간 중에는 조림사업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해서 실패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1973년부터 시작된 조림사업은 “검목(檢木)제도”라는 것을 도입하여 산에 심은 나무를 1년 후에 방문하여 한 그루씩 모두 다시 점검하는 제도를 도입하였으며, 이로 인해서 1984년에는 조림목의 활착률이 전국적으로 94% 달했습니다. 따라서 1973년 이후에는 조림 성공률이 매우 높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친 후의 성과입니다. 조림 성적이 우수한 공무원은 승진을 시킴으로써 산림공무원의 근무 의욕을 높여 주었으며, 하나의 인센티브로 작용했습니다.



3. 질문: 현재 ‘인공림’과 ‘자연림’의 비율은 얼마나 되는가?


   답변: 앞의 1번 질문에서 답변한 대로 총 산림면적 633만ha 중에서 인공림이 170만ha 정도 남아있으므로, 인공림의 비율 27%이며, 자연림의 비율은 현재 73%입니다. 현재 국내 목재(원목 기준)의 17%만 자급자족하고 있는 형편이므로 더 목재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조림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4. 질문: 한국은 사막과 같이 불모지로 변한 황폐지를 어떻게 복구했는가?


   답변: 사방(砂防)공사로 해결했습니다. 사방공사란 황폐한 산에서 폭우로 흙이 씻겨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경사지에 수평 방향으로 골을 파서 그곳에 외부에서 좋은 흙을 가져와 메꾸고, 나무와 풀을 심어 토사 유출을 방지하는 공사를 말합니다.


   가장 모범적인 사방공사를 경북 영일지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경북 지역은 6·25동란의 피난민으로 인해서 인구 밀집 지역이었기 때문에 산림황폐가 심했습니다. 특히 영일지구는 토양이 이암(泥岩) 혹은 혈암(頁岩)으로 되어있어 비가 오면 겉흙이 힘없이 씻겨나가고, 가물면 돌처럼 굳어져서 식물이 자랄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영일지구는 3개 시·군, 9개 면, 115개 마을에 걸쳐서 총 107,408ha의 방대한 면적에 산재해 있는 총 4,528ha의 황폐지였습니다.


   정부는 1974년부터 1978년까지 총 38억 원의 예산으로 연인원 355만 명을 동원하여 영일지구에 사방공사를 실시했습니다. 이 지역은 1907년 일제시대부터 50여 차례에 걸쳐서 사방공사를 실시했으나 실패했던 곳입니다. 결국, 정부의 굳건한 의지로 성공하여 세계를 감복시켰던 기적이었습니다.



5. 질문: 예전에 깊은 산속에서 만연하던 화전(火田)을 어떻게 없앴는가?


   답변: 한국은 고려 시대 말부터 화전민에 의한 산림황폐가 매우 심했습니다. 1979년 정부는 14년간의 노력 끝에 화전민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했습니다. 마지막 통계에 의하면 총 30만 796가구의 화전민(당시 농촌 인구의 13%, 혹은 전 국민의 6%에 해당함)이 총 12만 ha(자세하게는 124,643ha)의 산림을 훼손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총 163억 원의 예산을 쏟아부어 화전민을 산 아래 마을로 이전시키거나 정착촌을 조성하여 영농을 도왔으며, 광부로 취직시키거나, 도시로 이주시키면서 직업을 알선해 주었습니다.


   훼손된 산림 중에서 86,000ha를 다시 산림으로 복구하였으며, 나머지는 농경지로 인정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사업도 세계역사를 새로 쓴 대과업이었으며, 개발도상국에서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기적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사방사업과 화전민정리사업 등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환경복원의 모범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6. 질문: ‘농촌 연료 채취 중단’이 산림녹화에 도움이 되었는가?


   답변: 1970년대에 농촌에 구공탄이 보급되어 산에서 연료채취를 중단한 것이 산림녹화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농촌 연료 해결 없이는 산림녹화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이승만 정부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1959년부터 총 46만ha의 연료림을 성공적으로 조성해 놓았는데, 농민들이 1970년대 후반부터 연료를 채취하지 않자 이 숲을 목재 생산림으로 전환하여 보존함으로써 결국 산림녹화에 일조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7. 질문: 우리나라는 대경목(직경이 큰 나무) 생산이 불가능한가?


   답변: 대경목은 토심이 1m 이상 되는 곳에서 생산이 가능합니다. 예전에 황폐했던 산림의 토양은 산복과 산 정상에서 토심이 1m 미만입니다. 그러나 야산의 산자락과 계곡 부위는 토심이 더 깊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대경목 생산이 가능합니다.


   다행히도 백두대간에서는 토심이 1m 이상 됩니다. 백두대간은 설악산, 오대산, 두타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을 잇는 총 680km에 해당합니다. 6개 도, 12개 시, 20개 군을 아우르는 매우 큰 면적으로서 우리나라 산맥의 등뼈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산림 면적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깊은 산속의 토심은 모두 1m 이상 되며, 대경목 생산이 가능한 지역입니다. 현재 임업용 혹은 보존림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8. 질문: 대경목을 생산하는 숲만이 유네스코 등재 가치가 있는가?


   답변: 대경목을 생산하는 숲만이 유네스코 등재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산림의 공익적 기능(환경 보존 기능)은 나무의 직경에 관계없이 숲이 우거질 때 발휘됩니다. 다양한 침엽수(소나무)와 활엽수(참나무)가 섞여서 자라는 혼효림에서 그 기능이 더 커지며, 한국의 산림은 어느 곳에 가나 소나무와 참나무가 잘 어울려 자라고 있기 때문에 직경에 관계없이 환경보호 기능이 선진국의 우거진 숲 못지않게 뛰어납니다. 특히 토사유출 방지, 홍수 예방, 맑은 물 공급, 공기정화, 기상 완화, 산림 휴양, 종 다양성 보존, 야생동물보호 기능 등의 환경보존 기능은 현재 우리나라 숲 정도(평균 연령 40-50년)에서도 충분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9. 질문: 한국의 성공적인 산림녹화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가?


   답변: 1982년 유엔 산하 기구인 FAO(식량농업기구)는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개발도상국이다.”라고 칭찬했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서독, 영국, 뉴질랜드도 성공국가로 포함되어 있었지만, 이 나라들은 모두 선진국이었으며, 국토가 황폐했던 것이 아니라, 종전으로 귀향하는 군인들의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나무를 많이 심고 잘 가꾼 경우라서 전 국토가 황폐했던 한국과는 상황이 매우 다릅니다.


   2006년 미국 지구정책연구소장 레스터 브라운(Lester Brown) 소장은 “한국의 산림녹화는 세계적인 모델이다. … 우리도 지구를 다시 푸르게 만들 수 있다.”고 한국의 산림녹화를 극찬했습니다.


   한국은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6위로서 산림에 대한 개발 압력이 매우 큰 국가입니다. 그리고 전국의 국토가 극심하게 황폐한 상태에서 단기간에 산림녹화에 성공한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입니다. 개발도상국의 산업화는 산림 훼손이 당연히 수반되는데, 한국은 예외였습니다. 이런 점이 한국의 산림녹화를 UNESCO에 등재할 수 있는 세계사적 의미를 가진 강점입니다.



10. 질문: 우리나라 ‘산림녹화’의 주요 성공사례는?


    답변1: 1974년~1977년에 실시한 영일지구 사방사업의 성공사례

    영일지구 사방사업 (from PPT).jpg

 

    답변2: 화전민 정착촌을 만들고, 직장과 집, 학교 등을 지원한 사례

    화전정리 (from PPT).jpg



11. 질문: ‘산림녹화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가치’에 대한 추가 설명 자료는?


    답변: 인터넷 홈페이지(ksofp.or.kr)와 유튜브에 동영상 자료가 있습니다.

    이곳( http://ksofp.or.kr/sub/sub02_04.php?boardid=movie&mode=view&idx=22&sk=&sw=&offset=&category)이나

    이곳(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51&v=YPknappiuLw)을 눌러 들어가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끝*